여행기

낯선 도시에서 한 달씩 살아보기 [발리, 치앙마이, 마라케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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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치앙마이, 마라케쉬 세 도시에서 한 달을 보내는 팁
이 이야기는 여행잡지 Artravel #18호에 게재된 여행작가 박인님의 여행기입니다. Artravel과 위시빈의 협업을 통해 여행잡지에 모두 담지 못했던 사진들을 추가하고 디지털의 정보로 방문했던 명소들을 기록하여 독자분들에게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발리

    Jalan Pekandelan, Marga, Kabupaten Tabanan, Bali 82191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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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아트래블 TRIP. 16에 이어 두 번째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기 실험 이야기다. 지금까지 기쁘게, 기꺼이, 재미있게 일하며 열정을 다했지만 어느새 나는 다른 삶의 모습에 목이 말랐고. 좀 더 나답게, 나의 방식으로 맘껏 살아보고 싶어서 떠났다. 지금 치앙마이에서 쉐어하우스를 열기까지, 이건 그간 나의 집을 찾아 헤맨 미니 미니 보고서다.
발리 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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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발리인가?발리?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신혼여행지,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서퍼들의 파라다이스... 그렇다! 뭐랄까 굉장히 아름답고 고급스럽고 평화로우며 심지어 로맨틱(!)한 느낌마저 든다. 아, 어차피 한 달 살아보기 실험이라면 나는 반드시 이 곳에 가야겠다! 여기서 살아봐야겠다. 유명한 휴양지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런 거지, 뭐. 요즘 TVN 「윤식당」의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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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첫 인상은 어땠어?아침에 눈을 딱 떴는데 온갖 새소리가 들리고 친절함이 온 몸에서 흘러내리는 듯한(!) 호스트가 천연천연한 과일로 가득한 아침식사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 물론, 약간 과장이지만. 진심으로 감격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몽땅 사진으로 찍고 싶었다. 친절한 미소를 띈 사람들, 여유로운 분위기, 여기저기 보이는 사원, 쫄쫄이 요가 팬츠를 입고 우아하게 길을 걷는 서양 언니들, 그 옆에 향을 피우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발리 여성, 그 뒤에 서있는 서핑보드를 들고있는 몸매가 착한 오빠까지... 진짜 여기 잘 왔구나. 여기가 발리구나 발리! 덩실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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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밥을 먹어야지!인간은 참으로 간사한 동물인 것이다. 발리에 대한 감격은 한 3일 정도 지나니까 사라져버리고 각종 레스토랑의 가격표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일명 와룽(Warung)이라 불리는 로컬 가게들을 하나씩 방문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나의 일상은 나시짬뿌르(NasiCampur)라고 하는 인도네시아식 백반정식과 함께 하게 되었다. 나시(Nasi)의 뜻은 '밥', 짬뿌르(Campur)의 의미는 '혼합한'으로, 그대로 풀어내면 '혼합한 밥'이다. 한국의 백반처럼 밥과 여러 종류의 반찬을 곁들여 먹을 수 있는 든든한 한끼 식사 되시겠다. 가격은 12K 루피아, 한화로 세상에나, 천 원이다. 와룽에 가서 밥을 퍼 담고 먹고 싶은 반찬 3-4가지를 골라서 한 접시 가득 밥과 반찬을 담아 먹는다. 그날그날 채소가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종류도 달랐고, 만드는 아주머니 기분에 따라 맛도 조금씩 달랐다. 비빔밥 혹은 짬뽕밥 같은 이 음식이 나는 참 맘에 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가 있는 법. 나시짬뿌르가 지겨워지면 각종 열대과일, 코코넛, 빠빠야를 흡수했는데 한때는 코코넛이 너무 좋아서 1일 1코코넛을 했다.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장수를 만나면 코코넛을 고르고, 탁탁 무식하게 생긴 칼로 잘라서 쩌억 쪼개면 왈칵왈칵 나오는 코코넛 물을 마시는 게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었다. 물론 가격도 약 600원으로 매우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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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잠자는 곳을 찾자처음엔 에어비앤비로 구한 집에서 약 2주를 머물렀다. 원래는 약 3일 정도만 있으려고 했는데 호스트와 친해졌기 때문에 연장을 계속 하게 된 것! 나의 호스트는 발리에서만 3년정도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사람, 이름은 올렉(Oleg)이었다. 그의 사연은 참으로 흥미진진하였으니! 생각해보니 그는 내가 처음 만나본 우크라이나 사람이었다. 하기야 우크라이나 사람을 발리에서 만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지.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이 일어나자 고향을 떠나 따듯한 나라를 찾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유명한 발리를 왔는데 살다 보니 너무 좋아서 눌러앉게 되었다고! 내 판단에도 채식주의자이고 명상을 좋아하며 술과 담배를 멀리하는 그를 보니 우크라이나보다는 딱 발리에 사는 것이 훨씬 어울리는 것 같더라. 고향을 떠나서 여기서 살면 외롭지 않니? 가족이 보고 싶을 때는 없어? 라고 물어보자 무뚝뚝한(그러나 우크라이나 사람치고는 풍부한 표정의) 그의 얼굴이 실룩거리더니 매우 침울해진다. 곧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은 얼굴로 말했다.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할머님이 매우 아픈데 돌아가시기 전에는 뵈어야 할 텐데... 그렇게 감성 충만한 우크라이나 사람의 집에서, 발리의 날들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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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친구를 사귀어볼까나와 올렉은 서로를 도닥도닥이면서 절로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엎친대 덮친 격으로 그가 실연까지 당한 것이다! 그는 더더욱 울적한 얼굴로 집에 처박히기 시작했는데, 뭐 여행을 하며 외로움을 달고 다니는 나 역시 그의 마음을 십분 이해했던 지라 더더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발리에는 올렉처럼 고향을 떠나 발리에 정착한, 혹은 정착하려 하는 유럽 친구들이 꽤나 많았다. 코워킹 스페이스인 우붓(Ubud), 오니온콜렉티브(Onion Collective)에 가면 그런 친구들이 바글바글하다. 서로 고향의 향수를 달래면서 왜 떠나왔는지를 이야기하며, 헬조선, 헬미국, 헬영국, 헬러시아 등을 떠나온 우리들은 서로 동지애를 확인했다. 아, 그런데 발리 현지인 친구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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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발리 다이어리일단 닭이 목청 좋게 울어재껴서 아침 7시면 눈이 떠진다. 어제 사둔 빠빠야를 슥삭 잘라서 호로록 먹고, 개미들이 몰려오기 전에 (개미가 참 많다. 너무 많다. 흑) 재빠르게 치우고 짐을 싸서 자전거를 타고 코워킹 스페이스인 우붓(Ubud)으로 향한다. 집에선 인터넷이 거의 안 터지기 때문이다. 오후엔 우붓에서 열리는 각종 네트워킹 행사에 참여하고, 5-6시 정도가 되면 집 근처 리조트에 놀러 가서 시원하게 수영을 한바탕 한다. 오후 7-8시쯤 와룽에 들어가 나시짬뿌르를 먹으며 인도네시아 맥주인 빈땅(Bintang)을 한잔하고 자전거를 스륵스륵 타고 집에 간다.
월말정산
숙소 | 33만원식비와 생활비 | 62만원특별활동 | 22만원(각종 수업 및 활동비)1개월 총 지출비용 | 116만원
  • 치앙마이

    Mueang Chiang Mai District Chiang Mai Thailand

치앙마이 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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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는 왜?발리에서 한달 살기가 끝나갈 무렵,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고 주변에 물었을 때 10명이면 9명이 치앙마이를 가라고 추천했다. 아니 왜? 라고 묻자. 치앙마이는 일단 발리처럼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기 때문에 정착해 살기 좋고, 인터넷이 빨라서 일에 집중하기 좋으며, 심지어 더 싸다고 답하는 것이다. 발리에 바글바글한 관광객들 때문에 지긋지긋해질 무렵인데 인터넷도 빠르고 더 싸다고 하니 이거 뭐 바로 냉큼 치앙마이행 비행기표를 (발리>치앙마이 / 약 16만원)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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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첫 인상은 어땠는데?택시 운전사가 물어봤다. 어디 가냐? 님만? 올드시티? 음... 내 숙소는 둘 다 아닌 다른 어딘가였다. 운전사는 주소를 들여다보니 거긴 더 멀기 때문에 50밧을 더 내라고 했다. 바로 얼굴이 구겨졌다. 그래도 뭐 내가 아는 것이 없으니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서 왔냐? 중국? 일본? 한국이라고 하니까 활짝 웃으면서 치앙마이에 중국사람이 너무 많다고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택시 기사의 수다를 들으면서 빠르게 움직이는 스쿠터들, 쏭태우, 툭툭, 버스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도시의 소음이 낯설고 시끄럽고 정신 없다. 아니, 여기가 왜 좋다고 한 거지? 그렇게 우연곡절 끝에 숙소에 들어와 와이파이부터 체크해봤다. 빠르다. 한 4배 정도? 그래. 일단 한번 살아보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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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음식은 진리입니다!맛있다. 어디서 무엇을 먹어도 다 맛있다. 심지어 종류도 많다. 태국음식 하면 나는 팟타이, 뚬양꿍만 알았는데 정말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있었고 대부분 맛있었다. 길가에서 그냥 사먹어도, 동네 시장가서 사먹어도, 굳이 검색을 하여 맛집을 가서 먹지 않아도 맛있다. 게다가 싸다! 뭐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할 수 있는 거지? 나만 이런 건가? 해서 주변인들에게 물어보니 그들도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태국음식은 다 맛있는 것 같다고. 태국식 김치라고 말할 수 있는 쏨땀(태국식 그린 파파야 샐러드), 팟풍(태국의 채소 볶음), 까이양(치킨 숯불구이), 찹쌀이랑 같이 태국맥주 창(Chang)이랑 먹으면 부러울것이 하나 없었다. 특히 난 쏨땀 마니아였는데, 한국의 김치처럼 서민음식이기도 하거니와 종류와 맛도 각양각색이었다. 아삭아삭하면서 매운 쏨땀을 먹으니 굳이 한국음식 안 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뿐인가! 커피가 기가 막힌다. 발리에서 맛없고 쓰기만한 인도네시아 커피를 마시면서 참으로 씁쓸했는데, 치앙마이에는 정말 제대로 내린 에스프레소와 거품이 풍부하고 촘촘한 카페라떼를 마실 수 있었다. 높은 품질의 커피 원두, 바리스타의 정성, 거기에 정갈한 커피숍의 분위기까지! 그리고 이 모든 퀄리티를 지닌 카페라떼의 가격이 50-70밧, 한화로 1,500원에서 2,100원사이이니 치앙마이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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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려있는 것이 숙소뿐만 아니라, 숙소를 구하는 것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쉬웠다. 걸어서 돌아다니면 'Rent' 라고 적혀있는 콘도, 원룸형 숙소가 널려있다.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서 방을 보여달라 한 후 가격, 보증금, 시설, 인터넷 속도, 화장실 등등을 체크한 후에 계약을 하면 끝이다. 치앙마이 외곽에 위치할 경우 수영장 딸린 거대한 저택도 보통 1만-1만 5천밧(한화 33만원-48만원)이면 구할 수 있다. 에어비엔비에 한 3일 정도 머물고 뚜벅뚜벅 걸어 다니다가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커피숍 위 콘도에 빈방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는데! 깔끔하고 청결한 것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 바로 밑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향기로운 커피향을 매일매일 맡을 수 있다는 부분 때문에 감동하여 바로 계약을 했다. 방을 구했을 당시가 11월로 성수기 시작이었고, 당시 나는 스쿠터를 탈 줄도 몰라서 뚜벅이 신세였지만 집 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정말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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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현지인 친구는 어디에?과연 소문은 사실이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치앙마이에 둥지를 틀고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많은 이벤트, 행사들이 정말이지 말 그대로 매일매일 열리고 있었다. 이러한 행사 참여를 통해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도 있었지만, 나는 특별히 무에타이 수업에서 가장 친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무에타이, 태국 킥복싱은 치앙마이에서 꼭 배워보고 싶었던 것 중에 하나였다. 도착하자마자 체육관에 바로 한달 등록을 하고 일주일에 2-3번은 방문을 하여 트레이닝을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많이 버거웠고 그 과정에서 함께 숨을 거칠게 몰아 쉬던 동지(?)들과 친구가 된 것이다. 무에타이를 배우는 여성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더욱 빠르게 친해진 것 같기도 하다. 아쉬운 점은 발리와 비슷하게 치앙마이에서도 현지 친구를 만나는 것은 어려웠다. 태국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기도 하고 성격도 부끄러움이 많은 것인지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알고 싶다. 어떻게 하면 태국 현지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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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치앙마이 다이어리스쿠터 부당당당 소리와 커피를 북작북작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아침 8시에 기상한다. 킁킁 커피 향을 맡으면서 대충 일을 하다가 점심을 챙겨먹고 스쿠터를 타고 오후 3시쯤 무에타이를 하러 간다. 오후 4시부터 6, 7시까지 약 2-3시간동안 진행되는 무에타이 수업을 마치고 나면 매우 뿌듯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원 칼칼한 태국 맥주가 몹시 땡긴다. 체육관 동기들과 그렇게 수업을 듣고 맥주 한잔에 저녁을 먹고 집에 오면 9시. 지친 몸을 누이고 아주 꿀잠이 든다. 매우 건전한 하루하루가 아니었나 생각해 보지만 매일 매일 싸고 맛난 태국 맥주를 줄기차게 마셔댔군!
월말정산
숙소 | 27만원식비와 생활비 | 78만원1개월 총 지출비용 | 105만원
  • 마라케쉬

    Marrakesh 40000, Morocco

마라케쉬 에서 한 달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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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 마라케쉬?사실 난 마라케쉬가 모로코의 도시인줄도 몰랐다. 그리고 모로코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막연하게 유럽 친구들이 많이 놀러 가는 곳, 그리고 영화에 많이 나오는 곳 정도로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모로코라는 각인을 콕! 찍어준 영화가 있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무식한 팝콘 영화라고 무시했던 「섹스 앤 더 시티」 였다. 영화가 묘사한 마라케쉬는 신비롭고, 아름다우며 동시에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아시아에서 근 6개월을 지내면서 뭔가 새로움과 모험이 필요한 나에게 모로코는 마치 북소리가 둥둥 울려 퍼지는 영화처럼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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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첫 인상은 어떠했나!?모로코는 북아프리카다. 그래서 나는 막연하게 2월에 가도 따듯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나의 무지한 착각이었다. 욕 나오게 추웠다. 저녁에 도착해서 아주 두툼한 담요를 온몸에 칭칭 감고 잤는데도 허연 입김이 나왔다. 비실비실 아침을 먹으러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올라갔는데 새소리가 들리고 햇살이 비추면서 따끈한 민트티와 오렌지, 그리고 노오랗게 갓 구운 빵이 나를 떡 하니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어서 멀리 아잔(무슬림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들려왔다. 아라비안 나이트마냥 요리조리 구부러진 찻잔하며, 영화 속에서나 봤던 양탄자하며, 갑자기 머릿속에서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이 지나가고, 엔도르핀이 팡팡 터지는 걸 몸소 체험했다. 아프리카의 붉은 별, 여기는 모로코다. 난 모로코에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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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음식?
모로코 음식이 맛있다고 왜 아무도 이야기를 안 한 거지? 아니면 나만 몰랐나? 사실 모로코 음식점을 본 적도 없고, 먹어본 적도 없는 것 같다. 난 타진(Targine)이 뭔지도 몰랐고, 그게 모로코 음식인지도 몰랐는데 길쭉한 주둥아리의 갈색 그릇은 어디선가 본 것 같았다. 그 안에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고 1-2시간을 오래오래 가열하면 기가 막힌 맛의 요리가 탄생한다. 그뿐인가? 껌으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민트가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이며 그 허브를 뜯어서 설탕이랑 마시면 나도 모르게 계속 마시게 되는 민트티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비싸기로 유명한 아보카도가 너무 많아서 아보카도 주스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너무 맛나서 떠나기 직전까지 아보카도 주스를 마셔댔다.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금요일에 먹는 꾸스꾸스, 저녁에 호로록 떠먹는 하리라, 브사라, 가끔 간식으로 먹는 케프타, 특별한 날 공수해서 먹는 비스띠야까지... 모로코는 지중해 그리고 대서양과 맞닿은 나라이며 사막과 눈이 쌓여있는 아틀라스 산맥도 갖고 있는, 정말이지 다양한 지형을 골라 담은 축복받은 나라인지라 풍부한 식문화가 있으며 양질의 올리브 오일과 화덕에 갓 구운 빵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행복한 나라였던 것이다. 식자재가 좋으면 원래 다 맛있는 법. 올리브 오일에 빵만 찍어먹어도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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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찾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마라케쉬는 아니 모로코는 집 구하기가 가장 어려운 나라였다. 아무래도 동남아처럼 엄청난 관광대국이어서 원룸형 콘도가 존재하는 경우도 아니고, 더군다나 무슬림 국가인지라 방을 공유한다는 건 문화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말 그대로 친구의 친구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물어 물어 알아보는 수 밖에 없었다. 부동산이나 에어비앤비를 통할 경우 가격이 나에게는 꽤 비쌌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운이 좋게 한 프랑스 커플이 살고 있는 집의 방 한 칸을 쓰게 되었다! 물론 달랑 간이침대 한 개만 있는, 방문도 없어서 커튼을 임시로 만들어서 써야만 했던 그런방이었지만. 작은 부엌, 그리고 정원이 있는 집, 게다가 인터넷이 빠른(사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집이었기에 흡족했다. 뿐만 아니라 함께 집을 공유하게 된 친구들은 단편영화 제작자 그리고 큐레이터인 나름 예술인의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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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친구...헬로! 곤니찌와! 니하오? 헤이, 뷰티풀! 길가에서 나를 불러대는 그들 때문에 모로코에 도착한 날부터 떠나는 날까지 나의 소원은 '평범하게 길을 걷는 것' 이었다. 난 독보적인- 찾기 힘든 아시아, 젊은, 여성이었다. 게다가 특히 혼자서 걷고 있으면 그들의 시선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 뭐하니, 난 그저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필요한걸! 친구 사귀기가 이렇게 힘든 줄 처음 알았다. 온통 불어만 쓰는 불어 동네였던 것이다. 이때까지 어느 국가든 영어 사용자는 꽤나 쉽게 찾을 수 있었는데 이놈의 아프리카 동네에선 불어가 훨씬 보편적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 모로코에서 쓰이는 언어는 모로코어 > 아라빅 > 불어 > 영어 순이다. 즉 4번째인 것이다. 게다가 무슬림 국가의 특성까지 얹혀지니까(여성의 외부 사교활동은 극히 제한되어있다) 친구 사귀기라는 것은 진심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나처럼 정착해서 한 달을 거주하는 사람이 매우 드물고, 그렇게 거주하는 사람들도 99% 프랑스인인 경우가 많으며 당연히 그들은 그들끼리의 커뮤니티 안에서 살았으므로 나는 영어를 구사하는 현지인을 찾고 또 찾는 눈물겨운 여정을 반복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내 생각엔, 하루종일 묵언수행을 한 적도 있었다. (한숨) 급기야는 안되겠다 싶어서 불어를 배워보자! 다짐하며 불어 1:1 레슨을 받기도 하였으나, 언어의 장벽, 그리고 종교의 장벽은 만만치 않았다. 정말 노력 많이 했다. 친구 사귀려고 무슬림 모스크도 다녀왔다고! 불어 수업 역시 이렇게 하면 친구가 되지 않을까 해서 신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냥 수업만 하고 끝나버리더라고. 쩝. 다행히도 우연찮게 찾아간 명상모임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내 나이 또래의 현지인 친구 이브라힘을 알게 되었는데 그렇게 그를 통해서 다른 친구들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이브라힘에게는 나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며 친구였고 그는 마침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지라 나도 열심히 적극적으로 떠들어대며 친구가 되었다. 모로코 사람이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나라가 극히 제한적인데 재미있게도 한국은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게 모로코인이 무비자로 여행할 수 있는 나라이다. 그걸 핑계로 열심히 한국에 놀러 오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놀러 오기에는 너무 멀고 비싸긴 하다! 이렇게 사귄 소중한 친구들이랑 캠핑도 하러 놀러 가고, 맥주도 몰래 마시러 가고(무슬림 국가에서는 술은 불법이다) 사교활동을 할 수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이 친구들과는 지금도 연락을 하며 지낸다. 사귀기는 힘들지만 오래 지속되는 알짜배기 현지인 친구들인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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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마라케쉬 다이어리닭도 없고 스쿠터도 없다. 그래서 10시-11시까지 늘어져서 자다가 죄책감 때문에 비틀비틀 일어난다. 호밀빵에 올리브유를 스르륵 뿌리고, 치즈를 바르고, 그 위에 소금을 살짝 뿌린 아보카도와 함께 먹는다. 무척 행복하다. 오후 1-2시쯤이 되면 불어 수업을 들으러 걸어간다. 빠르게 20분을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음! 수업이 끝나고 근처 카페에 가서 노닥거리고 놀다가, 영어가 되는 친구를 만나면 신나서 수다를 떨지만, 대부분 혼자서 명상하고 놀게 된다. 그렇게 집에 오면 8-9시. 룸메이트들이랑 이런저런 수다를 떨거나, 함께 영화를 보다가, 취침!
월말정산
숙소 | 250유로식비와 생활비 | 590유로특별활동 | 200유로(불어 수업)1개월 총 지출비용 | 12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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