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세 갈래 길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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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길을 따라 모로코 여행
이 이야기는 여행잡지 Artravel #35호에 게재된 여행작가 백상현님의 여행기입니다. Artravel과 위시빈의 협업을 통해 지면에 모두 담지 못했던 사진과 방문했던 명소 정보들을 추가해 Artavel 매거진에 실렸던 특별한 여행이야기를 다시 발행합니다.
  • 모로코

    R208, Ouled Khellouf, 모로코

숨어 있는 길을 따라갈 때 비로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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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그 길이 보이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보름에서 한 달까지 여행의 길이가 길어질수록 모로코의 길들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유럽의 끝이자 아프리카의 시작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불리는 모로코. 온건한 이슬람 문화와 이방 여행자에게 열린 마음을 가졌다는 보편적 인식 덕분에 어느덧 여행자에게는 그나마 낮은 문턱의 아프리카 여행입문서와 같은 나라다. 페스, 마라케시, 카사블랑카 등 모로코의 대표적인 도시들과 사하라사막 정도 둘러보고 가는 여정이 대부분의 여행루트다. 하지만 나의 진짜 모로코 여행은 눈에 분명하게 보이는 큰 도시들이 사이사이, 희미하지만 찬찬히 시선을 주면 보이기 시작하는 숨어 있는 길들을 따라갈 때 비로소 시작되었다. 나에게 모로코는 세 갈래의 길을 보여주었다.
대서양 해안 따라 작은 마을들이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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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서양을 마주했던 건 스페인 남부 알헤시라스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탕헤르로 향하던 첫 모로코 여행에서였다. 단 3일간의 여정. 유럽과는 완전히 다른 탕헤르의 낯선 공기 속에서 모로코를 제대로 여행하고 싶은 의욕이 불타올랐다. 정확히 4년 뒤, 모로코를 다시 찾았다. 첫 여정은 대서양 해안을 따라 시작되었다. 대서양 해안 길을 길게 훑으며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달리는 길은 말 그대로 익사이팅했다. 유럽 대륙에 익숙해진 나의 시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의 빨판들은 새로운 문명과 사람들이 보여주는 낯섦에 활짝 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낯선 감정이 많이 찾아올수록, 여행의 가치는 깊어진다. 익숙함이 늘어날수록 여행이 그저 그런 일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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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실라

    Avenue Mauritanie, Asilah, 모로코

ASILAH 경계를 걷는 일
ASILAH경계를 걷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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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아실라(Asilah)는 가장 모로코답지 않은 마을일지 모른다. 포르투갈이 지배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전형적인 모로코 양식의 마을이라기보다는 포르투갈의 어느 시골마을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곳. 성채와 성벽에 둘러싸인 조용한 해안마을이다. 이 동네가 유명해진 건, 아실라 국제벽화축제 덕분이다. 매년 유럽과 모로코의 수많은 화가가 아실라 마을의 벽들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기 위해 몰려들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와 유럽의 감성이 어울린 벽화들이 하얀 벽들을 수놓고 작은 골목길 따라 동네 주민들이 일상처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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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실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해질 무렵이다. 그 시간이 되면 해안 성벽 길을 따라 걷는 편이 좋다. 성벽 너머로 바로 대서양 파도가 흰 포말을 일으키며 다가왔다가 스러진다. 골목길에서 마주친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던진다. "살람 알라이쿰!" 대서양 너머 가장 서쪽으로 해가 지는 걸 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이다. 여행도 그렇고 인생도 언제나 경계를 걷는 일이었다. 하늘과 땅, 시간과 계절, 꽃의 피움과 낙화, 들숨과 날숨의 경계,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 우리는 그 경계에서 배회하고 방황하고 절망하고 슬퍼한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고 일상을 떠나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것일지 모른다. 늘 높은 곳을 지향하나 실은 그림자만 보며 살아간다.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풍화된 담이다. 경계와 경계 사이엔 늘 계곡 같은 공허가 있고, 그 아득한 공간을 의미 있게 하는 건 꽃 한 송이처럼 사소한 것이다. 아실라 골목길에서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짓말처럼 담벼락 위로 꽃 무더기가 환히 나를 내려다본다. 또다시 꺾이고 시들지언정 대충 피지 않는 꽃들의 군락. 경계를 걷는 나에게 꽃들이 선물한 용기였다. 언젠가 담담하게 경계를 넘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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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북단, 모로코의 북단, 대서양을 향해 내달린 마을 아실라. 그 대서양의 소금기 가득한 파도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오묘한 보랏빛 어둠이 성벽을 넘고 골목길 사이로 지붕 위로 덮어오는 시간. 노란 국화처럼 슬그머니 가로등 하나 켜지고, 비로소 골목 속으로 겁먹지 않고 다시 걸어 들어갔다. 파도치지 않는 바다가 어디 있겠으며, 구름 일지 않는 하늘이 어디 있겠는가. 살아옴과 살아감의 중간 즈음 있는 서성임이 아실라라면 딱 적격이다. 이제 다시 밀물처럼 거칠게 나아갈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그것이 여행자이든 일상이든 당신과 나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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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디 이프니

    모로코 시디이프니 9RCF+2JW

SIDI IFNI 고요한 바다가 큰 파도를 품는다
SIDI IFNI고요한 바다가 큰 파도를 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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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해안 길 따라 그랑 택시(Grand Taxi)를 타고 모로코 가장 남쪽으로 향하면 시디 이프니(Sidi Ifni)라는 마을이 있다. 모로코에서 마을간 이동은 주로 그랑 택시를 이용한다. 마을 내에서는 이름처럼 작은 크기의 쁘띠 택시(Petit Taxi)를 타야 하지만, 시외를 달리는 택시는 그랑 택시다. 운전사를 제외하고 목적지가 같은 6인의 승객이 모이면 출발한다. 6명이 모일 때까지 속절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런 기다림도 막상 해보면 묘한 매력이 있다. 일단 6명이 모이면 앞자리 보조석에 2명, 뒷자리에 4명이 아크로바틱하게 끼어 앉는다. 어찌 되었든 손님 6명, 기사 1명 포함 대부분이 성인인 7명이 보통 크기의 승용차에 타고서 멈추지 않고 장거리를 달린다. 도로 주위로는 황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오로지 선명하게 부각되는 선은 길뿐이다. 길이 가진 힘이 특히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시속 100km 이상을 질주하는 수십 년 된 그랑 택시(대부분 늙은 벤츠 기종) 앞자리 보조석 에 숨을 헐떡이며 끼어 앉아 길의 정면을 바라볼 때이다. 그야말로 질주다. 뒤돌아볼 필요 없는 그랑 택시의 질주. 몸이 버려진 종잇장처럼 구겨져도 괜찮다. 이토록 가슴이 뻥 뚫리는 순간은 드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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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디 이프니는 평범한 어촌마을이지만, 파도가 워낙 좋아서 멀리서 찾아온 서퍼들이 한겨울인 1월에도 파도를 탄다. 파도와 왈츠를 추듯, 그들은 이리저리 몸을 던지고 발을 바꾸고, 한껏 파도 위로 솟았다가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대서양의 파도는 가슴을 뛰게 하는 묘한 힘이 있다. 스페인이 지배했던 땅, 시디 이프니는 온통 파랗고 하얗다. 시디 이프니에서 차로 20분 정도 달리면 도달할 수 있는 레그지라 플라게(Legzira Plage) 해변이 있다. 수천, 수만 년 세월의 바람과 쉼 없는 바다의 파도가 만들어낸 코끼리의 형상 같은 특이한 지형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대서양이 가까이 보였다. 가만히 바라보면 그리고 조금만 멀리 내다보면 잔잔한 바다일수록 큰 파도를 품고 있는 거였다. 골목길을 걸어도 마찬가지다. 저마다 공기의 밀도와 대기의 색채도 시시각각 다르다. 골목길에도 물리적인 공간을 뛰어넘는 저마다의 넓이와 깊이가 있다. 갑자기 마주한 골목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지만, 그깟 길이야 몇 번 골목을 배회하며 찾아내면 될 일이다. 그런데 도대체 우리 삶에는 얼마나 많은 골목이 있는 걸까. 인생은 여전히 길을 잃은 채 배회하고 있다. 시디 이프니의 골목길 끝 바닷가에서 수박을 팔던 노점상 남자를 기억한다. 그는 잔잔해진 바다처럼 고요했다. 먼 곳을 응시하는 시선은 눈이 아닌 깊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듯 보였다. 파도가 몰아쳐도 부동의 평온이 그에게서 감지되었다. 그래, 삶의 자리가 아니라 삶의 자세가 우리를 좌우하는 거다. 시디 이프니 골목길에 푸른 색채가 물들었다. 내게는 잊어서는 안 될 깊고 푸른 저녁이었다.
  • 아틀란스 산맥

    27QR+J9 Ain Soltane, 알제리

아틀라스산맥 자락을 따라 모세혈관처럼 길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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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해안 길이 낮게 평지를 따라 이어지는 길이라면, 모로코의 척추에 해당하는 아틀라스산맥을 따라 난 길은 고도에 따라 높아지고 낮아지며 이어진다. 이 길 곳곳에 마을들이 숨어있다.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에 걸쳐 동서로 뻗은 아틀라스산맥은 총 2,400km에 이르는 거대한 산맥이다. 해발 4,167m의 투브칼(Toubkal)산이 그 정점에 있다. 대서양과 사하라사막의 경계 역할을 하는 산맥이기도 하다. 모로코에서는 위에서부터 미들 아틀라스, 하이 아틀라스, 안티 아틀라스로 크게 구분되어 있다. 이 아틀라스 산자락 깊숙이 숨어 있는 길들을 따라 신비로운 마을과 사람의 흔적들이 있다. 아틀라스 산맥 샛길을 따라가다 보면 이름도 낯선 티지앤티카 고개(Tizi n'Tichka Pass, 2,260m)가 나타난다. 고개 정상에 올라 돌아보면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들이 똬리를 튼 뱀처럼 구불구불하고 아찔하다.
  • 샤프샤우엔

    Morocco, Chefchaouen

CHEFCHAOUEN 나의 색채를 찾는 일의 과정
CHEFCHAOUEN나의 색채를 찾는 일의 과정
모로코 북서부 산기슭에 있는 쉐프샤우엔 (Chefchaouen)은 이제 모로코 여행자들과 사진가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명소가 되었다. 다행히 아직 여행자들의 소란스러움에 기죽지 않는 쉐프샤우엔만의 공기가 남아있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영향으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양식과 모로코 전통의 베르베르 스타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온통 파란색과 흰색으로 칠해진 골목과 벽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은 가히 비현실적이다. '저 뿔을 보라.'는 멋진 뜻을 품은 마을. 이곳에 도착하면 갑자기 시간이 느릿느릿 흐른다. 젤라바를 입고 푸른 골목길을 한가롭게 거니는 주민들의 느린 호흡에 분주한 여행자의 마음도 조용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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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프샤우엔의 골목을 걷다가 문득 깨달았다. 누구나 저마다의 색채를 가지고 있고, 그런 색채들로 세상은 거대한 모자이크를 완성해 간다는 걸. 너무 가까이서 보면 모자이크가 보이지 않기에 조금 거리를 두고 나를 보고 타인을 보고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걸 말이다. 거대한 모자이크가 보일 때 진짜 내 색채도 발견할 수 있을 거다. 거리 두기를 하는 일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걸 쉐프샤우엔 골목길을 걷다가 새삼 깨달았다. 모로코를 여행하고 나서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 코발트블루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무지 자신의 색채를 모르겠다면 쉐프샤우엔의 골목길을 걸어볼 일이다. 어쩌면 그 길에서 희미하게나마 당신의 색채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구시가를 의미하는 메디나(Medina)의 중심은 우타엘하맘(Uta el-Hammam)이다. 여행자들로 붐비는 광장. 개인적으로 우타엘하맘에서 동쪽으로 조금 더 골목길을 걷다 보면 조용히 열려있는 마즈젠 광장(Place el-Majzen)이 마음을 더 편케 해줬다. 싱싱한 민트를 넣고 설탕을 듬뿍 쏟아 넣은 뜨거운 민트 티 한 잔을 천천히 비우고,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커피 가루가 유리잔 바닥에 잔잔히 내려앉은 아랍식 커피 한 잔 더 주문하고 광장 한쪽 노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일. 쉐프샤우엔에서 꼭 누려야 할 여행자의 사치이자 휴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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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ulay Idriss Zerhoun

    P7014, Moulay Idriss Zerhoun, 모로코

MOULAY IDRISS TO VOLUBILIS 시간의 길을 걷다
MOULAY IDRISS TO VOLUBILIS시간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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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북부 제르훈(Zerhoun) 산기슭의 작은 언덕 위에 세워진 물레이 이드리스(Moulay Idriss)는 모로코인에게 성스러운 순례지이자,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모로코에 이슬람을 최초로 전파한 물레이 이드리스 1세(Moulay Idriss I)가 789년 이곳에 와서 새로운 왕조를 건설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마을의 이름이 지어졌다. 그는 또한 페스를 최초로 건설한 왕이기도 했다. 물레이 이드리스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골목길도 옛 왕조의 중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협소하고 낡은 풍경이다. 마을의 중심에는 물레이 이드리스 1세의 영묘가 자리를 잡고 있고, 오로지 무슬림에게만 그 육중한 문을 열어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슬림이 아니면 아예 마을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을 정도로 신성시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레이 이드리스 1세의 영묘를 6번 순례하면 무슬림의 일생에 한 번은 꼭 해야 한다는 이슬람 최고의 성지, 메카(Mecca)로 가는 하지(Haji, 순례)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모로코인들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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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레이 이드리스에서 약 5km 떨어진 곳에 고대 페니키아와 로마제국의 유적이 남아 있는 볼루빌리스가 있다. 그랑 택시를 타려다 그 정도는 거리는 걸어도 되겠다 싶어, 천천히 물레이 이드리스 마을에서 내려와서 국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비옥한 토양에서는 올리브 나무들이 자라고, 대기는 무척 맑았다. 깊은 눈을 가진 동네 노인은 나귀를 타고 어디론가로 가고, 가끔씩 낡은 자동차들이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양 떼를 몰고 가는 목자가 있었다. 또 손님이 전혀 없을 것 같은 길거리에서 암모나이트 화석들이나, 찻주전자나, 대서양 해안가 모로코 최고의 도자기 마을 사피(Safi)에서 왔다는 도자기 그릇을 파는 노점상 노인도 만날 수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다면 알지 못했을 삶의 흔적들이 어디나 존재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로마인들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볼루빌리스는 당시 사람만 없을 뿐 도시의 형태는 완전하게 남아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2천 년 전 문명의 흔적이 지금도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어찌 보면 인간의 위대함이기도 하지만 인생무상이기도 하다. 돌로 지어진 석조 아치보다도 지속할 수 없는 인생이 애틋하다.
  • 사하라 사막

    P5109, 모로코

모든 길은 사하라에서 소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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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로코 여행에서 제일 멀리 존재하는 영역이 사하라사막이었다. 일생에 한 번 갈 수 있을까 싶은 곳이었고, 모로코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도 사하라사막에 간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막을 향해 계속 남동쪽으로 길을 찾았다. 시외버스와 그랑 택시를 번갈아 타며 페스에서부터 계속 내려가는 여정이었다. 버스 앞으로 한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같은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여행이란 자유롭게 가고픈 대로 나만의 모터사이클을 타는 일이다. 물론 길은 낯선 길이면 좋겠다. 가본 길은 이미 알고 있기에 제한적이다. 상상력이 솟지 않고, 가슴이 뛰지 않는다. 그래서 늘 길은 낯설어야 한다. 그래야 심장이 쿵쾅거린다. 모로코에서 가장 심장이 뛰는 길은 사하라사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 미델트

    M7H8+XR 모로코 미델트

MIDELT 아틀라스 산맥을 바라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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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중심부에는 고지대 평원이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도시가 바로 미델트(Midelt)다. 바로 미들 아틀라스와 하이 아틀라스산맥이 만나면서 절충지대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해발 1,508m의 미델트는 북쪽으로 페스와 메크니스 그리고 남쪽으로 사하라사막으로 향하는 여정의 딱 중간지점에 있다. 그 곳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사막처럼 황량한 황톳빛 대지 위에 미델트가 갑자기 생뚱맞게 나타난다. 드넓은 평원을 시선으로 훑으면, 시선이 끝나는 지점에 아틀라스산맥이 커튼처럼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1,500m가 넘는 해발고도와 대서양과 인접성 덕분에 미델트는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정한 온도를 늘 유지하고 있다. 사막으로 서둘러 가는 마음에 필요한 멈춤의 지점이 미델트였다. 가끔은 그렇게 길 한가운데서 멈춤이 필요하다. 멈춤 가운데 먼 산을 바라보는 시간이 또한 필요하다. 먼 산을 바라봐야 지나온 길의 길이도 가늠하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의 길이도 재볼 수 있다. 길고 팍팍한 여정 속에서 힘이 되는 건 길의 중간에 만나는 미델트 같은 곳이다.
  • 사하라 사막

    P5109, 모로코

SAHARA 모든 길이 소멸하는 곳
사막은 홀로 돌아보는 일이 불가능하다. 길이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막 초보의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낙타 몰이꾼을 불러서 낙타를 타고 그의 안내를 받아야 사막으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다. 사막 유목민인 베르베르족 모하메드(Mohamed)라는 20대 청년이 나의 길잡이였다. 사막 깊숙이 가장 높은 모래 언덕 아래 거짓말처럼 오아시스가 있었다. 그 곳에 있는 베르베르인 텐트에 짐을 풀었다. 모하메드가 준비해온 재료로 잘 익힌 타진 요리로 저녁을 먹고, 허브 차 한 잔 서로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20대 중반인 그는 가족의 생계와 동생들의 교육을 위해 낙타 몰이꾼도 하고, 일이 없을 때는 알제리 국경 근처까지 가서 화석 캐는 일로 돈을 버는 청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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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흑 같은 어둠이 사막을 덮었고, 끊어질 듯 말 듯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모하메드, 어두울 때는 사막에서 길은 어떻게 찾아? 너무 깜깜하잖아."
"어두울 때는 길을 찾으려고 땅을 보면 안되죠. 그럴 땐 오히려 땅에서 가장 먼 하늘을 봐야 해요. 그 하늘을 보면 별들이 길을 알려주죠. 별을 보면 길이 보여요."
어린 왕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땅에서 길 자체를 찾는 건 시간 낭비인지도 모른다. 진짜 길은 나의 한계 속 시선을 벗어나 저 멀리 별들 사이로 난 자연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좋은 시계를 가지고 있군요. 저는 시간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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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았나 보다. 대화하다가 갑자기 툭- 던진 그의 두 문장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가슴에 뜨거운 불을 켜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게 하는 시인의 문장이었다. 뜨거운 차를 마시다 체한 듯이 숨이 막혔다. 깊은 고요로 가득한 사하라 사막의 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 고개를 숙인 채 있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모하메드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거뭇하게 흐린 모래언덕 너머 별들이 총총 빛났다.
그리고 우리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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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든 길은 사하라로 향했고, 사막 속으로 소멸했다. 가장 아름다운 길들의 무덤이 바로 사하라가 아닐까. 사막은 곧 모든 발걸음이 향하고 소멸하는 곳에 생긴 길이기 때문이다. 여행도 그랬다. 존재하는 길 위를 걸었고, 그러다가 길을 잃었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놀랍게도 미지의 길이 희미하게 시야로 들어왔다. 비록 가끔 힘에 부칠지라도 여행자로서 길을 걷고, 잃고, 찾아가는 이유다. 과거의 길이 사라지면 새로운 길이 탄생하고, 하나의 여행이 끝나야 새로운 여행이 보인다. 진정한 사랑은 두 마음일 수 없듯이. 길이란 늘 한 마음으로 지향해야 할 여행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의무 같은 것. 그 길을 누군가는 지혜라고 하고, 누군가는 깨달음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나는 시(詩)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우리는 여행자이자 동시에 모두가 길의 시인(詩人)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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