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 [우유니 소금사막, 볼라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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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이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여행잡지 Artravel #02호에 게재된 여행작가 오재철, 정민아님의 여행기입니다. Artravel과 위시빈의 협업을 통해 지면에 모두 담지 못했던 사진과 방문했던 명소 정보들을 추가해 Artavel 매거진에 실렸던 특별한 여행이야기를 다시 발행합니다.
  • 우유니 소금사막

    Uyuni,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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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가을, 우리는 집과 예단, 혼수 대신 414일간 세계여행을 떠났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운 여자와 사진작가로 잘나가던 남자였다. 떠나기 위해 집과 자동차를 정리했고, 쓰던 가구와 물건을 모두 팔아 치웠다. 한국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말만 남긴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배낭 두 개 달랑 메고.
He said “당신의 상상 속 천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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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떠난 지 132일,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향하는 우리의 발걸음엔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갈 길이 바빴다. 혹여 ‘물 찬’ 우유니를 보지 못하게 될까 초조했다.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은 우기와 건기로 나뉘는데, 12월에서 3월까지 우기에 속한다. 하지만 이 시기라 해서 항상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확률이 높다는 뜻일 뿐. 때는 3월 초, 우기가 거의 끝나는 시기였기에 정말 운이 좋아야 물 찬 우유니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오, 신이여!
‘하늘과 소금’, ‘비 온 후 갬’, ‘바람은 필요 없음’ 천국의 조건이다. 최근에 내린 비가 발목 언저리에 찰랑거릴 정도로 차 있어야 하고, 그 물에 비친 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한다. 별것 아닌 이 몇 가지 조합이 딱 맞아떨어지면 천국이 드러난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하늘이 땅이고, 땅이 곧 하늘인 곳. 지평선 위에 떠 있는 모든 것을 데칼코마니처럼 그려내는 우유니 소금사막이다. 빛과 소금이 만들어내는 신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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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상상 속 천국은 어떤 모습인가? 눈 부신 햇살? 하얀 뭉게구름?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행복한 미소? 앞, 뒤, 옆을 보고 발 아래까지 둘러 보아도 온통 천국의 풍경이다. 눈이 부시다. ‘정녕 지구 상에 존재하는 곳인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당신이 어떤 상상을 하든 그 이상의 천국을 보여준다.
우유니의 시공간은 우리가 알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손을 뻗치면 잡힐 듯한 지평선, 아니 수평선인가? 원근감이 없어 동서남북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은 가늠 조차 어렵다. 지표 하나 없이 길을 찾아 나선 주민 가이드가 신기할 따름이다.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도 우유니 여행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처럼 ‘초현실’, ‘비현실’이 바로 우유니를 대변하는 단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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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대자연 속에서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으랴? 나 역시 미친 듯이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또 누른다. 어디를 찍어도 멋진 작품이긴 하지만 우유니 그 자체는 아니다. 천상의 우유니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 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고개를 드니 찬란한 태양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 하늘에서 떨어지는 해와 땅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이 지평선에서 만나고 있다. 이 상황이 어찌 된 영문인지 정신을 차릴 새 없이 두 개의 태양은 서서히 하나로 합쳐지더니 이내 사라져 버린다. 마치 거대한 거인의 입 속에 갇힌 것 같기도, 커다란 세상의 문이 닫혀버린 것 같기도 하다. 어슴푸레 떠오르는 두 개의 달빛 호수 아래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
She said, “천국에도 밤이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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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니 소금사막에 대한 첫 느낌은 그야말로 ‘언빌리버블’. 해가 진 후에도 진한 감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쉬이 가시지 않는 흥분에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느덧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켰고, 그즈음 지난밤 우리를 숙소로 데려다주었던 가이드가 다시 돌아왔다. 더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으니 지금 출발해야 한다 했다. 이보다 더 놀라운 광경이 있다고? 새벽 3시에?
그는 어둠 속에서 지프를 몰기 시작했다. 아무런 표지판이 없는 소금사막에서 물 찬 우유니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던 한낮의 재주도 신기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방향을 딱 잡고 차를 모는 건 더 신기했다. 어떻게 길을 찾느냐는 물음에 낮에는 아주 멀리 보이는 (내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산을 지표로 삼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따라간다 했다.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방법. 별을 따라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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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행 중 밤하늘의 별을 볼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안전을 위해 해가 지기 전 숙소로 돌아와야 하고, 숙소 또한 대부분 시내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태어나서 어제까지 본 별을 합친 것보다 지금 이 순간 떠 있는 별이 더 많은 것 같다. 낮에 뜬 두 개의 태양이 지고 나니 우유니의 밤은 차가웠다. 콧날을 스치는 찬 바람만이 꿈속의 별들이 아님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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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은 낮의 우유니와는 전혀 다른 매력이 넘쳤다. 낮에 본 우유니가 보고 있어도 믿을 수 없는 경이로움이라면, 밤의 우유니는 넋을 놓고 바라보는 아름다움. 물 맑은 소금호수 위로 쏟아지는 은하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 섰다. 누가 머리 위에 쏟아져 발아래 반짝이는 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누가 까만 눈동자 속을 흘러가는 은하수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제야 칠흑처럼 어둡던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둡지 않았다. 어둡다 생각한 건 그저 고정관념에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영화 속에서 가능할 것 같던, 별을 따라가는 여행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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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우린 둘 다 서른을 훌쩍 넘겼다.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웬만한 일에는 무심하고 무뎌졌으며 살면서 부딪쳤던 크고 작은 시련에 다쳐볼 만큼 다치고, 구를만큼 굴러 세상과 맞짱 정도는 뜰 수 있을 만큼 크고 단단한 동그라미가 된 줄 알았다. 어른이 된 줄 알았다. 어느 날, 덜컥 만난 거대한 자연 앞에서 나는 그저 아직 '작은 점 하나'도 되지 않았음을 알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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